몇 달 전 사놓고 아직 한 컷도 찍어보지 않은 Konica C35 Flashmatic가 있는데 이거 살 때 함께 따라온 게 National Panashot PE-203이다. 모델명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건 가이드넘버(GN; Guide Number)가 20인 수동 플래시(manual flash)이다.
이걸 가지고 어떻게 사용할까 궁리하다가 일단 플래시에 대한 일반적인 기술을 공부해보자고 해서 여러 자료를 섭렵하여 수동 플래시에 대한 확실한 이해에 도달했다. 하지만 여전히 복잡한 순서에 맞춰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수동 플래시를 사용하는 일은 참으로 번거로운 일이다. 그러나 특정 플래시가 모든 경우에 편한 촬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수십 만원하는 TTL 플래시가 2,3만원짜리 수동 플래시보다 불편해질 수도 있다.
수동플래시는 오로지 아주 짧은 순간에 펑하고 터뜨리는 기능 밖에 없다. 광량도 정해져 있다. 게다가 화각를 변화시키는 기능조차 없다. 그러므로 카메라에서 플래시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조리개 뿐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광량이 일정하니 조리개를 열면 멀리까지 갔다가 반사되는 빛에 의해 필름이 감광되고, 조리개를 죄면 가까이에서 반사되는 빛만이 감광될 뿐이다. 여기까지는 조리개가 무엇인지 아는 카메라 사용자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대략 죄어서 찍으면 멀리있는 피사체를 찍을 수 없다는 단순한 공식으로는 정확한 노출 계산이 곤란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가이드넘버이다. 가이드넘버는 조리개에 따라 유효촬영거리를 계산하는 기준이 되는 값이다.
가이드넘버(GN) 20짜리 플래시는 f4에서 5m 위치에 있는 피사체를 적정 노출로 찍어준다. 조리개를 더 열어서 f2로 하게 되면 10m 위치에 있는 피사체를 적정 노출로 찍어준다.
그래서 가이드넘버 = 조리개 x 거리 라는 공식이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적정 노출이란 흰 종이를 희게, 검은 종이를 검게 찍어준다는 의미이다.
실제 다음 순서에 따라 플래시를 이용한 촬영을 해본다.
- 수동 플래시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매뉴얼 모드(M)를 사용해야 한다.
- 피사체와의 거리를 적당히 잰다. 3.6m쯤 된다면 얼른 GN 20을 거리 3.6m로 나눈 값 f5.6을 계산해낸다. 이게 바로 적정 노출을 만들어주는 조리개값이다. 조리개링을 돌려서 f5.6으로 맞춘다.
- 셔터 스피드는 1/30초로 맞추고 아주 밝은 실내라고 하더라도 1/60이 한계다. 1/30초는 배경의 밝기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1/125초 이상의 셔터 스피드로 찍으면 피사체만 밝고 배경이 어두운 동굴 사진이 나온다.
- 이제부터 노출 보정을 할 수 있는데 수동 플래시는 촬영거리와 조리개로 노출 보정을 할 수 있다.
- 더 다가가면 피사체가 밝게 찍히고, 뒤로 물러나면 어둡게 찍힌다. 이 경우에는, 기준 거리 3.6m에서 1.4배하면 5m가 되는 위치에서 찍으면 1스톱 어둡게, 3.6m를 1.4로 나눈 2.6m 위치에서 찍으면 1스톱 밝게 찍히는 것이다.
- 거리를 유지하고 노출 보정을 하려면 조리개를 한 단 더 열거나 조임으로써 더 밝거나 더 어둡게 촬영할 수도 있다. 잘 생각해보면 거리를 조정하는 것은 1.4를 곱하거나 나누거나 해야 하므로 복잡하다. 그러니 피사계심도가 중요하지 않다면 조리개를 한 단 더 열거나 조이는 게 훨씬 더 편할 것이다.
-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이드 넘버를 믿지 말고 80% 정도로 적당히 감해서 생각해야 한다. 일단 제조사가 가이드넘버를 뻥튀기하는 경우도 있고 램프의 수명이 오래 되어서 가이드넘버가 다 안 나올 수도 있고 완충전이 안 되어서 발광량이 적을 수도 있다.
- 플래시나 스트로보는 정식 명칭이 아니고 스피드라이트가 정식 명칭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건 잘못된 내용이다.
- “Electronic Flash”(전자 플래시)가 일반적인 표현이고 스트로보와 스피드라이트는 상표이다. 스트로브 리서치라는 업체가 스피드라이트를 상표명으로 등록했다. 니콘을 비롯한 카메라 업체들도 따라서 쓰고 있다.
- 정식 명칭이냐 아니냐는 누가 딱 부러지게 정할 수 없는 것 같지만 특히 상표명을 정식 명칭이라고 하는 건 더욱 그러하다.
- ‘흰 종이를 희게, 검은 종이를 검게’가 아니라 모두 18% 회색으로 찍어주는 게 적정 노출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 플래시 제작 업체에서 가이드 넘버를 정할 때, 흰 종이와 검은 종이를 모두 함께 촬영하여 흰 종이가 희게 나오고 검은 종이가 검게 나오는 그 조리개 수치와 거리의 조합으로 가이드 넘버를 결정하고 있다.
- 그런 의미에서 ‘적정 노출’이라는 표현이 나오게 된 것이다. 아마 그 상태에서 18% 회색을 촬영하면 18% 회색으로 나올 것이다.